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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교수 인터뷰] 양재현 교수
  • Writer Admin
  • Created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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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뇌인지과학과 양재현 교수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 과정 (이하 ‘포스닥’)을 마치고, 올해 5월 카이스트에 부임하신 양재현 교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 인터뷰어: 이정원 석박통합과정, 정지우 석박통합과정

 

Q1. 언제 어떤 계기로 연구자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학부 때 분자생물학을 배우면서 유전자 발현 조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당시 수업을 통해 배우는 대부분의 지식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서 밝혀진 것이더군요. 척추동물이나 포유류 같은 고등 생물에서는 유전자 발현이 어떻게 조절되고, 질병과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는지 궁금했죠.

 

-그럼 그때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신 건가요?

 

네, 막연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연구에 소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졸업 후 근육 세포에서의 유전자 발현 및 후성유전 정보 조절 연구를 시작했지만, 인턴 경험 없이 석사로 입학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실험이 아주 서툴렀죠. 하지만 모르는 것이 많은 만큼 배울 것이 많아 늘 즐겁게 실험했어요. 석사와 박사 과정 동안 히스톤 단백질과 Myod1 유전자 (근육 세포 분화의 마스터 유전자) 간 상호 작용을 연구했습니다. 박사 과정이 끝나갈 무렵, 세포 수준의 분자 기전 연구를 넘어 응용이 가능하고, 실제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연구도 함께하고 싶어 포스닥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분야를 고민하면서 ‘10년 뒤 어떤 연구가 가장 중요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죠. 그때 인기 있는 분야는 암 후성유전학과 줄기세포였는데, 이 분야는 이미 활발히 연구되고 있었어요. 저는 상대적으로 많이 연구되지 않은 분야를 해보자, 그리고 후에 누구에게나 도움을 수 있는 걸 해보자고 생각했고, 이에 가장 걸맞는 연구 주제가 ‘노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제가 포스닥을 지원했던 하버드의 David Sinclair 교수님이 포스닥 연구를 함께하자고 했고, 그렇게 노화를 대학원생 때 공부한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뇌에 관심을 가지고 분야를 좁혀나갔다기보다는, 생명과학 연구를 이어가다 뇌과학의 분야에 닿았다고 볼 수 있겠군요.

 

맞습니다. 처음에는 간, 근육, 신장 등을 포함한 다양한 세포와 조직에서 노화의 분자 기전을 연구했는데, 연구를 할수록 뇌의 노화만큼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는 없는 것 같았어요. 최근 세포 치료, 인공 장기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 많은 조직과 장기는 질병이 생기거나 노화되었을 때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라도 대체 가능할 거란 말이죠. 그런데 뇌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억, 감정, 사고, 사회적 상호 작용과 같은 개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것이 뇌이기에 새로운 뇌가 아니라 현재 뇌의 노화와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뇌 노화 연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Q2. 그렇다면 현재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연구하고 계신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뇌 노화의 분자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뇌 노화를 늦추거나 역전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생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DNA에 담겨 있는 유전 정보이고, 이 유전 정보는 후성유전 정보에 의해 조절됩니다. 전자를 컴퓨터의 하드웨어, 후자를 소프트웨어로 비유할 수도 있겠네요. 똑같은 DNA를 가지고 있어도 후성유전 정보가 달라지면 세포 타입이 달라지죠.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생물학적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에 신경, 근육, 면역 세포 등과 같이 각기 다른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죠. 포스닥 연구 동안 후성유전 정보의 손실이 노화를 가속화 한다는 것을 관찰했는데, 놀랍게도 반대로 소프트웨어를 복원하듯 후성유전 정보를 젊게 바꾸면 세포와 조직 또한 젊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후성유전 정보의 손실은 세포의 정체성 변화를 의미하고, 이는 노화동안 조직의 기능 저하를 일으킨다고 생각돼요. 다만 ‘세포 정체성 변화’와 ‘노화’ 두 현상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후성유전 정보 변화 → 세포 정체성 교란 → 노화’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후성유전 정보를 교정하여 정체성을 복원하였을 때 노화 속도나 방향이 달라지는지를 뇌에서 연구할 생각이에요. 또한 뇌의 노화가 다른 장기의 노화에 영향을 주는지, 아니면 반대로 뇌가 젊어지면 다른 장기도 함께 젊어지는지를 동물 모델로 연구해 보고 싶어요. 제가 포스닥 중 개발한 유전자 변형 쥐 모델을 이용하면 뇌에서만 특이적으로 노화를 빠르게 할 수 있어요.

 

Q3. 노화를 늦춘다면 몰라도, 되돌린다는 건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 같아요. 그게 가능할까요?

 

노화를 늦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미 고령에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노화를 늦추는 기술은 큰 의미가 없죠. 노화를 늦춘다는 것은 전보다 천천히 나빠지는 것이지 상태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궁극적인 해결책은 역노화라고 생각해요. 물론 쉽지 않겠지만 큰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유전자 치료나 약물을 이용했을 때 세포나 조직 수준에서 나이가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어요. 쥐 실험에서 역노화 유전자 치료가 늙은 쥐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남은 수명을 증가시킨다는 것도 최근에 보고되었고요. 또한 현재 구글이나 아마존, Open AI 창업자들이 역노화 기술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고, 많은 벤처 기업들이 역노화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어요. 아직 사람에게 테스트하기엔 이르지만, 노화를 거스르는 것에 대한 반감이 줄고 있고, 노화에 대한 이해와 기술이 더 발전하면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요.

 

Q4. 포스닥을 바이오 선진국인 미국, 그중에서도 하버드라는좋은 학교에서 하셨잖아요. 포스닥을 하면서 ‘이래서 바이오 분야가 발달했구나’, ‘이런 점은 우리 나라가 본받아야겠다’ 고 느낀 적 있으신지, 아니면 반대로 ‘이런 점은 우리나라가 한 수 위다’라고 생각하신 적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다른 도시 경험은 없어 보스톤에서의 경험을 말씀드리면, 미국 연구의 강점은 다양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인재가 모여 함께 연구하니까요. 다양한 국가, 문화, 인종이 섞여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를 배척하지 않고 귀 기울이는 분위기, 그리고 그것을 빠르게 테스트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것 같아요. 첫 포스닥 랩미팅 시간에 멘토가 ‘바보 같은 질문은 없으니 뭐든 주저 말고 이야기해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러더군요.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반대의견을 내는 것에도 자유롭고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연구자들이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도록 훈련받는 것 같아요.

한국의 장점은 미국에서의 협업과는 조금 다른 공동체 의식인 것 같아요. 미국은 개인주의가 강하다 보니 함께 일을 하면서도 개인의 성취에 집중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한국의 경우 공동의 목표가 세워지면 오히려 더 책임감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요즘처럼 연구의 규모가 커지고 공동연구가 늘어나는 시점에서, 임팩트 있는 대규모 연구를 수행하는 데 큰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Q5. 미국에 계속 머무르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오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2022년 SfN (Society for Neuroscience, 매해 미국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신경과학 학회)에서 정재승 학과장님께서 그 해 설립된 뇌인지과학과에 대한 소개를 하셨는데, 그때 학과의 비전과 발전 가능성이 기억에 남았어요. 그리고 미국과 한국의 대학을 비교해 보면 학교의 전반적인 규모나 연구비 수준에는 차이가 있지만 각 연구자의 연구 역량은 충분히 견줄만 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같은 얘기를 하시고요. 한국에서 열정 있는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연구하면 충분히 훌륭한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한국이 급속하게 고령화 되어가는 만큼 노화는 우리에게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는데, 그에 비해 노화 연구는 이제 갓 시작한 단계라 연구를 통해 문제 해결에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Q6. 이제 교수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신 셈이신데, 앞으로 교육자로서, 연구자로서 카이스트에서 이루고 싶으신 목표는 무엇인가요?

 

교육자로서는 학생들이 제한 없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기존의 것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능동적인 연구자와 리더가 되도록 돕고 싶습니다. 연구자로서는 노화라는 큰 주제 속에서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죠. 사람들이 저를 먼저 떠올리는 분야가 있으면 해요. 그리고 저의 연구가 연구실 내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사람들의 고통을 덜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Q7. 교수님 스스로 생각하시는 연구자로서 본인의 장점이 무엇인가요?

 

꾸준함인 것 같아요. 저는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마라토너예요. 포스닥을 시작하고 7년 차가 되어서야 첫 논문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보통 3~5년 내로 논문을 마무리하는데, 저는 논문을 쓰기 시작한 후 심사, 리비전, 추가 실험에, 코로나까지 겹쳐서 출판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어요. 하지만 제가 하는 연구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고, 초조해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몇 년 후에 난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와 같은 알기 힘든 먼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내일 혹은 일주일 뒤를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연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원하는 결과도 얻고, 가끔씩 필요한 운도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어요. 일의 효율성도 중요하고 전략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정말 중요하다고 믿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8. 다음 학기 어떤 강의를 하실 예정인가요?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노화 및 퇴행성 질환’을 강의할 계획입니다. 다양한 질환을 다루겠지만 노화 자체를 중심으로, 분자 수준에서 노화가 발생하는 원인, 이들이 세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루려 해요. 최근 노화 치료에 어떤 기술이 사용되는지도 포함할 것 같네요. 또한 학생들이 폭넓게 배울 수 있도록 우리 과에서 이미 퇴행성 질환을 강의하셨던 교수님들과 커리큘럼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합니다.

 

Q9. 뇌인지과학과 진입을 고민하고 있는 신입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새내기 여러분, 뇌 연구만큼 어렵고 복잡한 것도 없지만, 이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학뿐 아니라 철학, 심리학, AI, 공학 등의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죠. 이러한 폭넓은 배경의 전문가들이 겸비된 과가 바로 뇌인지과학과입니다. 기본적인 생물학에서 시작해 인문학적 지식까지 폭넓게 습득하면서, 본인의 흥미와 목표에 맞는 연구실에서 뇌를 주제로 심도 있는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융합 연구를 통한 깊이 있는 뇌 연구를 원하신다면, 뇌인지과학과가 바로 여러분이 찾던 학과입니다.